황인숙 - 하늘꽃

하늘꽃


날씨의 절세가인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텅 비는 것 같습니다
앞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에 걸려
뒷눈송이들이 둥둥 떠 있는
하늘까지 까마득한 대열입니다
저 너머 깊은 天空에서
어리어리한 별들이 빨려들어
함께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빨려들어
어디론가 쏟아져버릴 것 같습니다
모든 상념이 빠져나간 하양입니다
모든 소리를 삼키고
하얗게 쏟아지는 눈 오는 소리
나를 호리는 발성입니다

몇 걸음마다 멈춰 서
묵직해진 우산을 뒤집어 털어
길 위에 눈을 돌려줬습니다
계단골이 안 보이도록 쌓인 눈
아무 데나 딛고 올라가려니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내 방에 들어서 문을 닫으니
호주머니 속에 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황인숙 시인의 리스본行 야간열차를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 지난번 올린 글을 찾아보니 한달 전이네요.

어제 밤, 일찌감치 자보겠다고 술을 한잔 했는데도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어설프게 먹은 술이 깨려는지 머리는 아파오고, 조금만 더 지체를 하다가는 해가 떠버릴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는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나른한 기분 속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자전거를 탈 컨디션은 안된다는 이유로 올라탄 출근길 버스 안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모든 시가 다 좋았지만, 이제 한참 더워지고 있으니 이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심야영화 3편을 연이어 보면서 아침을 맞는 경우는 요즘도 종종 있습니다만, 체력이 된다면 책을 읽으면서 밤을 밝히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학교 때는 꽤 자주 있었던 일이었는데 말이죠...)

2008/06/11 15:02 2008/06/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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