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하는 존재 - 눈물을 마시는 새 중에서

"인정하지 않겠다고?"

"예."

"우리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륜은 소스라치게 놀라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륜은 그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그저 대책없이 유쾌하기만 한 도깨비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륜은 비늘을 부딪히며 말했다.

"당신들께서… 우리를 이유  없이 살육하는 생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다. 이유는 있지. 하지만 네가 말하는 것 같은 너절한 이유는 아니야."

"그럼 어떤 이유입니까?"

"우리는 너희들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만들었지."

"먹는다고요?"

"그래. 먹는 것. 그게 너희야. 그게  생명이지. 모든 동물들이, 식물들이, 생명이라는 생명은 모두 먹는다. 먹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지. 우리가 만든 것은 그런  것이다. 너희들이 벌이는 모든  짓거리의 경계엔 큰 글씨로 뚜렷하게 적혀있지. <일단, 먹고 나서>"

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우쇠를  바라보았다. 그와 반대로 시우쇠의 목소리는 점점 차분해졌다.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지.  일단 먹어야 살아있는  것이 저지르는 모든 웃기는 일이 가능해지지. 먹지 못하면 소용없어."

"누구나 다 아는 그런 이야기를…"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야. 륜  페이. 먹는다는 것은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외의  것을 파괴한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바위를 뚫는 낙수는 바위를 먹는 것이 아니야. 바위가 낙수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아니니까. 나무를 찍는 도끼도 나무를  먹는 것이 아니야. 도끼의 유지에 나무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니까. 그것이 먹는 파괴와 보통의 파괴의 차이점이지. 하지만 둘 다 파괴야. 알겠냐? 우리는 너희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파괴하는 것으로 만들었어. 하지만 생명은 파괴를 일으켜서 자신을 유지하지. 그런 것을 가리켜 '먹는다'고 하는 거야. 무생물은 그렇지 못하지. 낙수가, 파도가, 태풍이 아무리 파괴를 일으켜도 그것은 자신의 유지와는 상관없어. 그것들은 먹는다고 하지 않아. 파괴한다고 할뿐이지."

- 눈물을 마시는 새 중에서
2008/08/08 06:10 2008/08/08 06:10
트랙백 주소http://jackaroe.com/blogV3/trackback/145




페이지 이동< 1 ... 177 178 179 180 181 182 183 184 185 ...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