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 TV를 보다가

11월, 바람은 차가워지고, 모기는 여전히 극성인데, 사실 가을이 어떻게 오고, 또 가고 있는지 잘 몰랐다. 올해는 바쁜 일상에 묻혀 가을 같은 것 타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밥을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끙끙대다가 생각보다 심한 무 비린내에 기겁을 해서는 창을 열었는데 아파트를 빙 둘러 심어진 단풍나무가 불타고 있었다.

거기에 가을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가 널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어찌 얼굴, 표정, 온기 뿐이랴, 하지만 이제는 마음 한 구석에서 널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낯익은 얼굴
낯익은 표정
낯익은 온기로 기억하라

속절없이 외각대각하던 마음은 가고
마지막에 기억하게 될 이름은 당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안하다
사랑이었지만 잊어버려 미안하다

갈잎나무 앙상해지는 11월
멀리 붉은 우체통 하나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 남았었노라며
수취인 없는 한숨의 편지 보내본다
2008/11/08 22:11 2008/11/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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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jii2008/11/11 17:09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나에게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속시원히 모든 걸 가벼운 농으로 내뱉을 수 있을까...
    난 알아... 이제 시작이라는 걸....
    내가 견뎌야 할 시간이 이제 시작이라는 걸....
    • 연필로 쓴 글을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도 자국은 남듯이, 기억도 비슷한 것 같네...
      세월로 문지르면 지워지는 것 같아도 흐려질 뿐이지.
      억지로 지우려들면 공책이 찢어질테니 적당히 흐려졌을 때, 책장을 덮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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