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 청소부 / 사금(砂金)

청소부


누워 있는 것도 벽이었다. 출근길 서둘러 밟고 온
보도블록에도 무늬가 있었다. 단색 세포처럼 또박또박
놓여 있었다. 밟히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기우뚱
거리며 빗물을 토해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줄지어 서 있었다.
길을 만들며 스스로 자라야 했다.
한 번쯤 앞서고 싶은 길
바람을 견딘 만큼 몸으로 주름이 잡혔다.
지워지는 혈관을 찾아 나는 불안하게
흔들려야 했다.

햇살은 구름 사이로만 쏟아졌고 아이들은 티눈처럼
자라 있었다. 엉킨 뿌리를 들고 일어났다.
태풍이 겹겹으로 껴입은 주름을 더듬고 갔다.
그리고 바람이 통 없는 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이들은 조금씩 흔들릴 때 아름다웠다.
껴안은 모든 것들 속에서 너희들은 동티처럼
부활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소문 없이 떨어질
나를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깨끗한 너희들,

밟히는 족족 주름을 벗고 탄생하는 은행알들.


어제 밤 집으로 가는 안양천 길을 걸으면서, 아침 출근길 사람에 치여 이리저리 밀리면서 이 시가 생각났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왜 청소부라 지었을까?
누워 있는 벽을 밟으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 문득 눈을 들어 가을 햇살 속에서 자랐을 아이들의 자리를 더듬어 보다.


사금(砂金)


이제 그 눈물 속에서 보낸 밤들을 돌려보낸다
흐르는 강물아, 썩어 흐르는 강물아 그 깊은 밤들은 이제
끝이다 나는 지금 흰 모래에 섞여 빛나는 너의 눈빛을
갖고 있지만, 너를 만날 수는 없다 흐른 뒤 무거운 강물아
말 못 하는 너의 손을 잡고 바다까지 따라갔던 일을 잊는다
이제는 추억을 버려야 살 것 같다 어느 한 순간을 지배하던 아픔도
정들었다 어디로 갔느냐 나는 지금 겨울이다 강둑에 앉아 마른
풀을 만지며 흘러가지 않는 구름들을 본다, 전할 말 없느냐

2008/03/04 10:35 2008/03/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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