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영 - 지상의 숟가락 하나 中에서

"그동안 허다한 죽음들을 보고 들어왔지만, 그때처럼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껴본 적은 없었다. 막연한 추상으로 먼 곳에 머뭇거리던 죽음이 어느날 급습하여 어버지의 몸을 관통해서 나와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그 예리한 통증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부친의 영전에서 맏상제로서 내가 흘린 눈물 속에는 필경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아버린 자의 두려움과 슬픔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 탄생은 우연일지라도 죽음은 누구도 피할수 없는 필연이라는 것. ......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 현기영 <지상의 숟가락 하나> 중에서 -
2008/03/18 09:22 2008/03/18 09:22
트랙백 주소http://jackaroe.com/blogV3/trackback/68




페이지 이동< 1 ... 254 255 256 257 258 259 260 261 262 ... 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