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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못 / 허물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종양 덩어리가 호흡기를 누르기 때문에 누우면 숨을 쉴수가 없어
20일이 넘도록 앉아서 잠을 자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모부는
하얀 침대 위에 굽은 못처럼 앉아 계셨다.

숨을 쉬기에도 버거워 쇳소리가 나는 목으로 당신께서는
'너 결혼할 때 까지는 죽지 않을테니 걱정말라' 하셨다.

이제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진 손을 잡으며
'올 여름엔 다 같이 낚시하러 위도에 가요. 몸조리 잘 하세요' 하며
인사하고 도망치듯 나온 건물 밖 햇살은 너무나도 맑고 따스해 서글펐다.

너무 눈이 부셔 자꾸 눈물이 났다.


허물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2008/03/10 13:09 2008/03/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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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학 - 청소부 / 사금(砂金)

청소부


누워 있는 것도 벽이었다. 출근길 서둘러 밟고 온
보도블록에도 무늬가 있었다. 단색 세포처럼 또박또박
놓여 있었다. 밟히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기우뚱
거리며 빗물을 토해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줄지어 서 있었다.
길을 만들며 스스로 자라야 했다.
한 번쯤 앞서고 싶은 길
바람을 견딘 만큼 몸으로 주름이 잡혔다.
지워지는 혈관을 찾아 나는 불안하게
흔들려야 했다.

햇살은 구름 사이로만 쏟아졌고 아이들은 티눈처럼
자라 있었다. 엉킨 뿌리를 들고 일어났다.
태풍이 겹겹으로 껴입은 주름을 더듬고 갔다.
그리고 바람이 통 없는 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이들은 조금씩 흔들릴 때 아름다웠다.
껴안은 모든 것들 속에서 너희들은 동티처럼
부활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소문 없이 떨어질
나를 위해 남아 있어야 했다. 깨끗한 너희들,

밟히는 족족 주름을 벗고 탄생하는 은행알들.


어제 밤 집으로 가는 안양천 길을 걸으면서, 아침 출근길 사람에 치여 이리저리 밀리면서 이 시가 생각났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왜 청소부라 지었을까?
누워 있는 벽을 밟으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 문득 눈을 들어 가을 햇살 속에서 자랐을 아이들의 자리를 더듬어 보다.


사금(砂金)


이제 그 눈물 속에서 보낸 밤들을 돌려보낸다
흐르는 강물아, 썩어 흐르는 강물아 그 깊은 밤들은 이제
끝이다 나는 지금 흰 모래에 섞여 빛나는 너의 눈빛을
갖고 있지만, 너를 만날 수는 없다 흐른 뒤 무거운 강물아
말 못 하는 너의 손을 잡고 바다까지 따라갔던 일을 잊는다
이제는 추억을 버려야 살 것 같다 어느 한 순간을 지배하던 아픔도
정들었다 어디로 갔느냐 나는 지금 겨울이다 강둑에 앉아 마른
풀을 만지며 흘러가지 않는 구름들을 본다, 전할 말 없느냐

2008/03/04 10:35 2008/03/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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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실 시라는걸 잘 해석해내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책 뒷편의 해설 같은 것들을 보게되면 시를 보는 시선이 해설의 영향을 받아 고정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이 시를 옮겨 적기 위해 시집을 열었다가 무심코 뒷편의 해설을 읽어보았다.(사실 시집을 산지도 읽은지도 오래되었으니 '이제는 뭐 읽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음... 다 맞는 말이었다. 뭐 '너'의 의미가 좀 과장되게 해석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고개를 끄떡거리게 만드는 말들이었다..

'음.. 그렇군 이 시가 그런 뜻이었구나....'

하지만, 나에게 이 시는 한 남자가 커피숖에서 여자를 기다리다가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 시킨 커피도 다 식어버리고, 커피숖의 문이 딸랑거리며 열릴 때마다 움찔거리다가 심심파적으로 냅킨에 자신의 마음을 긁적거린 낙서다.

'글의 의미는 행간에 있다.'는 말만큼 내가 좋아하는 말이 '글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나머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라는 말이니까.^^
2008/02/29 01:05 2008/02/29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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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사람들은 사랑을 모른다
자기 마음대로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는 어찌되든지
나만 사랑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너는 무엇을 원하는지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어 보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만
내 마음대로 네가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다가 죽어야 하는데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나를 살리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을 알지 못한다
너를 살리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얼른 끝내자고 가볍게 시작한 일이 눈덩이처럼 커지더니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그럭저럭 마무리가 됐다.

다른 사이트에서 일을 하는 친구과 메신저를 통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직 메신저 대화명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인터페이스 점검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메신저의 대화명을 바꾸는 일이다.)

'음... 뭘로 할까?' 한참 고민을 하다가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 내가 생각했지만 왠지 멋진데..? 음....' 

뒤통수가 간질간질 ... 이리저리 찾아보니 역시나 언젠가 본 기억이 난다.

참 단순한 생각으로 읽었던 시였는데, 감상을 쓰고 싶은데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난다.

.
.
.

아.. 머리하고 가슴이 뒤죽박죽 말이 혀끝(손끝)에서 빙글빙글..

우선 여기까지... 한 10번쯤 더 읽어보고 글을 수정 해볼란다.

뭐 어떤가 어차피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아! 이건 정말 장점이로군.. -0-)

뱀다리 : 글을 쓰는 내내 들었더니 이 노래가 이 시하고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올림 -_-;;;

2008/02/28 17:11 2008/02/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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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 소사 가는 길, 잠시 / 구름 그림자

소사 가는 길, 잠시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에 머물다 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머물고 싶었으나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사람 사이의 관계, 인연 ... 그런 것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같다. 열심히 하면 누구라도 내 진심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나를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
.
.
글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전부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껏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겠지 이제부터라도..

구름 그림자


태양이 밤낮 없이 작열한다 해도
바닥이 없으면 생기지 않았을 그림자

초봄 비린 구름이 우금치 한낮을 훑어간다

가죽을 얻지 못해 몸이 자유로운 저 구름
몸을 얻지 못해 영혼이 자유로운 그림자

해방을 포기한 시대의 쓸쓸한 밥때가

사랑을 포기한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다
2008/02/28 00:09 2008/02/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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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영 - 파리지옥 / 거리에서

파리지옥


긴 목숨의 내 삶이
너를 오래도록 기다리지

간질간질 내 육질을 지지면서
거리마다 자장을 흔들어
너의 새끼발가락까지 내 무릎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젠 너를 놓아줄 수 없어

누구와도 물 한잔 나누지 못해 홀로 서 있었지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건조한 살들을 만난다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기 불편했어.
필요에 의한 수급이 가끔 있었을 뿐이야.

하여, 먼지바람으로 네 음성을 막고
달콤한 너의 연육은 사막에 널어 두었지
혹시 너를 만날까 사막의 언덕을 돌아돌아 집에 이르곤 했어

그러나 너는 시럽냄새를 풍기며 사뿐히도 내게 온다.

순간,

하얀 꽃대궁을 밀어올리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

눈처럼 부신 다섯장 꽃잎을 펼쳐 올리면서
햇살을 받는 영광의 하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젠, 바위같은 함묵을 깨워버린 너의 분홍빛 살점을

다시는 내어주지 않으리
나, 오랜 사멸의 늪에서 무척이나 버둥거렸지.
삶인지 죽음인지 초로를 마시고 모운을 삼켰지

그리고 이제 내 사랑은 지옥에 있거든
너는 파리지옥에 와 있거든


요즘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드는 관계로 뭐라도 공부를 해볼까 싶어서 JSP라는걸 붙잡고 있다.
뭐 일거리가 떨어지면 대충이야 해내는 상황이지만 워낙에 개념 부족인지라 책을 좀 봐야지 하고 사놓은지가 한참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어나가는데, 문득 책에 나와있는 얘기가 딱 지금 내 얘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걸 설명하고 싶지만, 그럼 좀 먼 나라 얘기를 한참 해야하고 사실, 어떤 내용이 내 이야기 같았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 )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하면, 모든 노래 가사가 자기 얘기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소설책도 아니고, 프로그래밍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다니.. 직업병인건가?


거리에서


   내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 유쾌한 아낙네들 거리에 쏟아져 있고, 남 모르는 햇살을 간직한 채 미쳐 우는 바람은 아직도 내 곁에. 시계는 갔다 그저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내 시계는 갔다 사랑이 찬란한 빛을 잃었듯이 마음은 흘러가고 있었다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 나아 그를 만나 떠다니지도 않을 곳에서 내 마음의 꽃들 걷어내고 싶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를 하나쯤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내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 비바람이 그칠는지 골목길에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내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2008/02/27 10:15 2008/02/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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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 눈이 내려 세상에 쌓이듯 내 사랑이 그대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눈이 내려 세상에 쌓이듯 내 사랑이 그대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눈이 내려 세상에 쌓이듯 널 생각하는 나의 마음이
너의 마음에 쌓일 수 있다면 좋겠다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빛나게 하듯이
내 마음으로 너의 마음을
행복할 수 있게 한다면 좋겠다

세상에 내린 눈이 오래 머무를 수 없듯이
내 마음이 너의 마음에서 사라진다 하여도
한번쯤은 너의 마음속에
나의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널 생각하고 있다는 건만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이 영원히
너의 마음속에 있기를 바라는 건 아냐
그저 한 번쯤, 딱 한 번쯤
너의 마음속에서 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적고 싶었다. 눈이 오니까...

언제부턴가 눈이 오면 막히는 길을 떠올리고, 질퍽거리는 길을 주춤주춤 걸어가며 짜증부터 내는 나이가 되버렸다.

하지만, 가슴 속엔 여전히 아침 일찍 빨갛게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면서 눈부시게 빛나던 숫눈길을 걸어 학교를 가던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있다.

눈 참 장하게 오신다.

2008/02/25 19:24 2008/02/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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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 꿈의 페달을 밟고

꿈의 페달을 밟고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시인의 시집을 접하고, 잘 모르겠지만 다들 좋다고 하니까 열심히 읽었다. 다들 두번째 시집도 기대된다고 하니까 나도 두번째 시집을 기다리다가 ... 기다리다가..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내 나이 서른이 되고, 다시 시집을 읽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다시 읽으면서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의미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느낌이 좋다. 글의 의미가 행간에 있다면, 이제서야 조금씩 행간을 읽을 수 있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

조금은 성급하지만, 봄인가 싶을만큼 날씨가 좋다. 같이 일하시는 분이 며칠째, '벌써 봄이야? 아.. 그러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 이렇게 중얼거리고 다니신다. 왜 봄이 오면 안된다는 것일까? 뭐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꺼리는 이유가 있겠지뭐 하는데 문득 이 시가 생각났다. 너무 뜬금없을지는 모르겠지만 ......

어쩌자고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구나
속 뒤집어놓는, 저기 저 감칠 햇빛
어쩌자고 봄이 오는가
사시사철 봄처럼 뜬 속인데
시궁창이라도 개울물 더 또렷이
졸 졸
겨우내 비껴가던 바람도
품속으로 꼬옥 파고드는데
어느 환장할 꽃이 피고 또 지려 하는가

죽 쒀서 개 줬다고
갈아엎자 들어서고
겹겹이 배반당한 이 땅
줄줄이 피멍든 가슴들에
무어 더러운 봄이 오려 하느냐
어쩌자고 봄이 또 온단 말이냐

2008/02/21 13:58 2008/02/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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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당구리2008/02/21 14:07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그러니까 아침에 자전거 타고 오다가 읊은 시?
  • 틀에 박힌 지식들은 언제나 틀렸다.

    -폴 제이콥스


    현대자동차가 고속형 경찰 수소전기버스를 공개했다. 기존 경찰버스는 임무 수행 상황으로 인해 도심 내 공회전과 이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 문제가 심각했다.


    현대차는 31일, 대한민국 경찰 수송을 담당할 '고속형 경찰 수소전기버스'를 공개했다.
  • 성공의 정점에서 사업을 재정비하라

    -에드 잰더(모토로라 CEO)


    세월호 참사 당일 해양경찰이 맥박이 있는 상태의 익수자를 발견하고도 헬기를 이용하지 않아 병원 이송에 4시간 41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20~30분이면 충분히 후송할 수 있었던 현장의 헬기는 해경청장 등 고위직이 탔다. 익수자는 네 번에 걸쳐 배에서 배로 옮겨졌고, 이송 과정에서 숨졌다.
  •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레이 커즈웨일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저녁 퇴근 시간이가까워지면서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 미세먼지(PM10)가 치솟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27일 중국 북부지방과 몽골 고비사막 부근에서 발원한 황사가 중국 내륙지역에 잔류했다가 31일 서풍을 타고 한반도로 유입되고 있다"며 "31일 오후 현재 서해 도서 지역과 경기 서해안, 강원 북부 등지에는 황사가 관측되는 곳이 있다"고 밝혔다.




여태천 - 오늘도 안녕하신가

오늘도 안녕하신가


몇 명의 아이들이 어제처럼
몸보다 길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지나간다
아이들의 길어진 머리끝에서
어둠은 시작된다
한 걸음 물러서서 저녁을 기다리는
그대의 작은 집 아직도 캄캄한
창문은 내 그림의 배경이다
11월의 거리에서
오들오들 떨며 안녕하시냐고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그림 속의 그대도 그런가
수직의 언덕길을 오후의 햇살이 넘어설 때까지
무거운 내 그림의 구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무거워진 저녁의 나뭇잎들이
그대의 등 뒤로 떨어진다
쫓기듯 낙엽의 무게를 빨갛게 그려 넣으며
이건 연습이야, 라고 중얼거린다
그림자가 희미해진 길 위로
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시간들
그 뒤로 점차 한쪽으로
그대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질 것이다
기이하게 늘어진 그림 속으로
저녁이 벌써 반 넘게 옮겨지고 있다
그대는 여전히 안녕한가


문득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 안녕하시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실로 오래된 기억 속의 그들은 신기하게도 잊고 싶은 기억들은 점점 흐려지고 좋은 기억들은 선명하게 덧칠되어 왠지 지금 보면 웃으면서 술 한잔 할 수 있을 것 같은 포근함만이 남아 찬바람 부는 날이면 더욱 그리워지는 누군가가 되고 만다.

안양천를 밟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안부를 묻고 싶은 너가 있었다. 그대는 여전히 안녕하신가.
2008/02/18 20:08 2008/02/1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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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2월 9일이었던가? 약속이 있어 부천역을 서성이다가 시간이 많이 남아(실은 정확한 약속이 잡힌 건 아니었다. 집에 있기에는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바람도 쐴겸 일찌감치 길을 나선 참이었다.)

부천역사에 붙어있는 쇼핑몰 7층에 교보문고를 들어갔다.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쪽을 쭉 훑어보다가 '이 달의 베스트셀러 코너'였나? 정호승 시인의 시집이 올라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는데 그 동안의 시를 모아놓은 시선집이었다.

'시선집만 몇번째야.. 새 시집은 이제 안 내시나?' 시무룩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왠걸 '포옹'이 3년만에 나왔단다. 그것도 작년 9월에... 낼름 사들고 집으로 와버렸다. 캬.. 역시 좋구나...

스테인드글라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시집을 다 읽고서(시집을 빠르게 여러번 읽는 편이어서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가지 마른 안주를 챙겨 시원한 맥주를 몇잔 마시고서 잠이 들었다. 참으로 행복한 주말이로구나.
.
.
.
결국 약속을 잊은 벌(술김에 이불을 제대로 덮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겠지만...)로 난 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해야 했다.

2008/02/18 14:16 2008/02/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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