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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영 - 봄편지 1, 봄편지 2

봄 편지 1


봄은 온다고 아우성 치는데
나에게 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뿌연 황사에 젖은 동인천
계단 밑에 뒹구는 아이의 울음.
버려진 깡통처럼
구겨져 있지는 않은지
잘 견뎌내고 있는지
너에게 봄을 전한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생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저들은 세상이 그만큼 잘 보일까.
잘 보이는 만큼 더 길이 많지 않을까.
나에게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한 가지 길만이 놓여 있고
그래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멈추어서 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어디까지 온 것일까.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봄은 온다고 아우성 치는데
너의 길은 잘 보이는지.
밤안개에 젖은 포스터.
너에게 알릴 소식은 없고
나는 어쩜 울고 있다
너에게 안부를 물으며 나는 울고 있다.


비만 오면 황인숙 시인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를 읊어 대는 것처럼 봄이 오면 항상 이 시를 중얼거리게 된다.

며칠 전, 선배의 생일에 술을 한잔 하다가 '나한테 직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뭐 아직도 그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선배에게 말했던 것 처럼 일과 재미는 Left Outer Join 이니까...

단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저 '길이 보이지 않아서', '할 줄 아는 것이 이것 뿐이라서' 라는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뿐이다.

그나저나 식중독이라니... 갑자기 비도 추적추적 오는데, 아프니까 서럽다. ㅠㅠ


봄 편지 2


너에게 묻고 싶은 봄이 있었다 가끔.
떨어진 꽃잎처럼 너의 봄도
속절없이 가고 있는가고.
이젠 봄은 가고 없다.
가는 봄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올 봄을 기다려야 하는 내가 슬프다.
아픈 것은 기다림에 지쳐 갈 내 모습이다.
- 이것을 이기주의라 부른다.
너의 봄은 어떤지
잘 가고 있는지
가는 것이 서럽진 않은지
너에게 묻고 싶은 봄이 있었다 가끔.

아.
나의 봄은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가.

2010/04/26 17:42 2010/04/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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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 그릇 1

그릇 1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節制와 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圓은 모를 세우고
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마음이 깨져도 칼날이 될까?.... 글쎄...
2010/04/16 14:56 2010/04/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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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씨가 있던 자리

감씨가 있던 자리


냉장고 청소를 하다가
어둡고 시린  냉장고 한구석 조용히 앉아있는 단감 하나를 보았다
언제 사 놓았는지, 아니면 받았던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아
잠깐 미안해 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못 먹게 된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 혼자 피식거리고는
감을 집어들고 밥상 머리에 앉았다.

6등분을 할까 8등분을 할까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면서 껍질을 깎아내고
접시에 올려 숭덩숭덩 썰어 한 조각 입에 물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머릿 속에 고이는 순간 입 안에서
톡!하고 감씨가 있던 자리가 튀어올라 저 안쪽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단단하던 그 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연주홍 살 속에 박혀있는 자국들을 보고는
누가 쿡쿡 찔러놓은 상처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벌어진 마음 들여다 볼 때마다 그리움으로 아련했던 것들이 그저
가슴 한구석 옹이처럼 박혀있는 추억의 빈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2009/11/30 19:01 2009/11/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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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 어두워지는 순간

어두워지는 순간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사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그 모든 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늑대처럼 오래 울고, 멧새는 여울처럼 울고, 아카시가 흰 꽃은 쌀밥 덩어리처럼 매달려 있고, 호미는 밭에서 돌아와 감나무 가지에 걸려 있고, 마당에 선 나는 죽은 갈치처럼 어디에라도 영원히 눕고 싶고.........그 모든게 달리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개는 다른 개의 배에서 머무르다 태어나서 성장하다 지금은 새끼를 밴 개이고, 멧새는 좁쌀처럼 울다가 조약돌처럼 울다가 지금은 여울처럼 우는 멧새이고, 아카시아 흰 꽃은 여러 날 찬밥을 푹 쪄서 흰 천에 쏟아 놓은 아카시아 흰 꽃이고.........그 모든 게 이력이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베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이상하지, 오늘은 어머니가 이것들을 다 버무려서
  서당골에서 내려오면서 개도 멧새도 아카시아 흰 꽃도 호미도 마당에 선 나도 한사발에 넣고  다 버무려서, 그 모든 시간들도 한꺼번에 다 버무려서
  어머니가 옆구리에 산미나리를 쪄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다 어두워졌네.

 
 
너무 긴장을 했는지 끊어질듯 팽팽해진 정신이 좀 풀어질까 싶어 들어간 서점에서 집어들게 된 시집이 문태준 시인의 '맨발'이었다.

시 한편을 읽을 때마다 시계를 힐끗거리고, 심장은 쿵쿵거리고, 해는 구름 사이로 숨었다 나섰다를 반복하면서 내 눈을 두드려대고 ...

도저히 집중할 수 없고,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유독 이 시 한편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한참 시를 써보겠다고 손가락을 움찔거리던 시절, 시는 축약되고, 반복되고, 어려운 무엇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함축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시가 쓰고 싶어졌다.

내 마음을 오롯이 담아내면서도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시.

문득 그런 시가 쓰고 싶어졌다.

2009/11/17 10:38 2009/11/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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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영 -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제 또 초록 뽕나무 한그루
내 앞에 설 것이다
나는 한 잎씩 깨물어 삼키고
한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고 매일 매일
그 똥의 색깔은 다르다
열두 가지에 매달린 삼백 예순다섯 이파리 퇴비되어
내게로 되돌아올 때
꺼풀을 벗은 누에가 번데기 되듯 그 바깥 둘레에 나를
싸주는 집, 명주실 얼굴은? 몇 개나 될까


며칠 전 비가 내린 후로 아침 저녁으로 싸늘해진 날씨 탓에 오늘이 며칠인지는 가물가물해도 '올해가 얼마남지 않았구나......'라는 아쉬움만은 마음 한구석에서 하루하루 커져가고 있었는데, 어제 밤 전순영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뜨끔해서는 두달 전쯤 작성해 놓았던 '아랫쪽 일상이 정리되는대로 이것저것 가지고 내려와 실컷 읽어야지 목록'를 펼쳐서는 책을 좀 보다가(보는척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한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는데, 똥이 되고 마는데, 지나간 시간 아쉬워하면 뭐하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울컥해서는 소리도 한번 질렀다가 시무룩해서 돌아눕고 그렇습니다. 요즘...

2009/11/03 09:02 2009/11/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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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숯기둥2009/11/03 13:31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맑은 공기 마시고 계시나요?
    • 공기? 그렇게 맑지 않아.. 일하는 곳도 그렇고 사는 곳도 그렇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거든.
      뭐 자전거 타고 10분만 달려도 논밭이 펼쳐지긴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일에 쫓기다보니 뛰쳐나가기가 쉽지는 않네..^^
  • 미아2009/11/04 01:58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응... 똥이 되는 시간이라...
    • 내 스스로 느끼기에 고민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지가 대략 15년쯤 된거 같은데.... (그 이전의 고민들은 잊었거나 좀 애매한 것들이라;;)

      고민의 수준이라는게 도통 발전이 없네.. 물론 해결도.. -_-




최승호 - 멍게

멍게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


얼마 전,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의 시집을 샀다. 샀었다. 사기만 했다.  '참 오랫만이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서울 집 책장 한구석에 꽂혀있다. [아랫쪽 일상이 정리되는대로 이것저것 가지고 내려와 실컷 읽어야지 목록] 의 첫번째 페이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이제 슬슬 바람 냄새도 차가워지는 계절이고, 옆구리에 책 하나 끼고, 커다란 나무 밑 평상에서 하루종일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큰 꿈인걸까?

2009/09/12 16:28 2009/09/1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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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a2009/09/18 09:07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글씨를 언제 바꾼거야? 이 글씨는 뭘까...
    내 존경하는 선생님 성함이 "이승호"샘인데 말이지
    샘도... 시집을 냈었어.. 동무들과... :)
    그냥.. 그렇다는...?
    • 이 폰트는 한겨레결체, 선배한테 폰트가 있었나보네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떤지 모르겠네.




이태수 - 먼 불빛 /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고

먼 불빛


왜 이토록이나 떠돌고 헛돌았지
남은 거라고는 바람과 먼지

저물기 전에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등 떠미는 저 먼지와 바람

차마 못 버려서 지고 있는 이 짐과
허공의 빈 메아리

그래도 지워질듯 지워지지 않는
무명(無明) 속 먼 불빛 한 가닥


비가 왔는데도 바람이 시원합니다. 아직 좀 쌀쌀하긴 해도 겨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이제 정말 봄인가 봅니다. ....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어렴풋한 기억에 작년 이맘 때는 봄을 타는지 마음이 영 싱숭생숭해서 한참을 고생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두통에 몸이 좀 괴롭긴 해도 마음은 상당히 평온한 하루하루네요.

감기 기운도 있고, 여전히 밤에는 춥고, 마음은 봄이라고 믿고 싶은데,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문득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숨이 가빠지면 그 때가 바로 봄이겠지요^^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고


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고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 바람이 분다.
지난해 사시사철 잉잉대던 그 찬바람이 분다.
그는 돌아오지 않고, 그를 기다리는 마음는
이토록 붉은데, 세상은 여전히 뒤죽박죽 돌아간다.
사람들은 벌써 그를 까마득히 잊어버렸는지,
그도 이젠 어디로 영영 가버렸는지, 꿈속에서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던 봄이 다시 오고
산과 들판, 뜨락에 갖가지 꽃이 피었는데도
내 마음에는 봄이 돌아오지 않는다.
풀잎도 꽃들도 안 보이고, 냇가의 얼음도
처마 밑의 고드름도 녹지 않는다.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
초점 잃은 눈동자. 그래도 아랑곳없는 사람들.
공장의 기계들은 잠은 자고, 집들이 흔들린다.
거리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은
가슴에 별빛을 끌어들이지만, 따스한 밥을 꿈꾸지만,
밥그릇 사이에 둔 아귀다툼이 날로 드세진다.
벼랑에 선 사람들의 아우성과 그 아우성 사이로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몰아친다.
봄이 왔는데도 봄이 오지 않는 이 세기말의
어둠 한가운데서 그래도 하염없이
봄을 기다린다. 그를 기다린다.

2009/03/13 15:37 2009/03/1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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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호 - 단풍나무

단풍나무


지나가네 지나가 버리네
그가, 그녀가, 당신이ㅡ

그냥 지나가 버리네
여기
너무 오래 단풍나무 아래서
그를, 그녀를, 당신을 기다렸네

설레는 손짓은
단풍나무 잎사귀처럼
붉게 물들어가고

단풍나무 붉은 그늘 아래로
사랑이거나 괴로움이거나
골몰한 생각들이 스치고
그냥
지나가 버리네

그는, 그녀는, 당신은
훗날
어느 차거운 바위에 앉아
말하겠지

그때,
(단풍나무 그늘에서)
쉬어가야 했다고

우리가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쳐온 생의 기별들이
단풍나무 붉은 그늘 아래로
차곡차고 쌓이고 있네


힘들다... 기다리는 것도 지나가 버리는 것도      .

2009/02/11 11:33 2009/02/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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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등 / 삶은 가짜다 / 죽음에 관한 어떤 기록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우리 삶에서 손이 닫지 않는 곳, 내 몸의 뒷편에 죽음이 있다. 우리 삶의 일부이자 마침표이면서 결고 직시하고 싶지 않아 재단되어진 그 바깥에 버티고 서있다.


삶은 가짜다
-어느 재연배우의 자살


나는 애초에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난 죽어서 더 유명해졌지요
죽어서야 주인공이 되고 네이버 검색 1위가 되었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몇 년 더 꾹 참고 살아볼 걸 그랬어요
난 삶을 재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삶은 몸뚱어리가 없어요
문득 영화 제목이 생각나요
죽어야 사는 여자라고
난 죽어서 살고 있어요
죽음은 때때로 삶을 똑바로 비춰주기도 하더군요
누가 내 역설적인 죽음을 증명해주세요
내 삶은 가짜였어요


죽음에 관한 어떤 기록


거칠었던 일생일 수록
죽음은 단순하다
길 위에 쓰던 붉은 문장들을
질끈 쥔 손아귀로 움켜쥐고 가버렸으니

집도 없었다
아내도 없었다
주민증도 없었다
쓰레기통 옆에 낙인마냥 찍혀진 얼어붙은육체만이
그의 부재를 증명할 뿐이다
강원도나 격포
혹은 전라도
그 어디쯤 떠돌아온 발자국들이
사내의 몸을 찢고 사방으로 달려가고 있다

졸음처럼 사내의 몸을
부드럽게 지웠을 눈송이들
망각은 언제나 육체안에 깃들어 있던 것
거칠었던 일생을 자신의 몸에 꾹꾹 눌러 담고
사내는 지퍼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거칠었던 일생일수록
죽음은 단단하다

2009/02/05 13:40 2009/02/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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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옛 노트에서

이윤학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한승원 - 달 긷는 집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장석남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어제 오랫만에 부천 교보문고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게 아니라 서점에서 책을 쥐어보는 것도 오랫만이지??' 라며 이리저리 고르다가 주루룩 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_-

그런데, 한사람을 제외하면 다 전에 읽었던(알고 있던) 시인들 뿐이네요. 다양하게 읽고 싶은데, 익숙한 쪽으로 손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음악도 좀 그런 편이네요. 하긴 낯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게 좀 심한편이긴 합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데 여전히 주춤거리게 된다는게 참 안좋은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질 않네요.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낯선 쪽으로 조금은 고개를 돌려봐야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옛추억을 퍼 올리는 것이 행복한 못난이지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니 고여있던 가슴에 무언가를 담아봐야겠습니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2009/02/01 11:48 2009/02/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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