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를 본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어제 밤(10월 6일)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레(뢰)메르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시인, 읽어본 적이 없는 시.

하지만 세계는 그를 인정했다.

우리 나라에 출판된 책은 한 권 뿐인데, 그나마도 절판이고...

지금이야 한 편의 시뿐이지만, 앞으로 계속 찾아 볼 생각이다.

외국 시도 가슴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 파블로 네루다였다.

이번 기회가 또 한번 외국 시(시인)에 대한 내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2011/10/07 09:31 2011/10/0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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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a 2012/01/13 14:27  Modify/Delete  Reply  Address

    웹 브라우저 컴포넌트 테스트 중

    그나저나
    새... 새글은 언제쯤 올리시려는지요

나무늘보처럼


한 백년 쯤
여기서 잠들고 싶어

당신도 나를 깨우지 마
달콤한 이 순간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지나간 시간들
천천히 되새김질 하며
눈 감은 채
이렇게

나무 위에서
한 마리 작은 짐승으로
순하게 눈 뜰 때까지
이대로 내버려 둬

세상의 모든 시름 다 잊은 채
느릿느릿
유유자적
한없이 행복하겠지


친구가 저에게 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무슨 동물이 되고 싶으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제 대답은 "나무늘보" 였습니다. 그 때, 마치 못볼 것을 봤다는 듯, 혹은 신기한 무언가를 쳐다보는 듯한 그 친구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네요. 아니 잊을 수가 없다기 보다는 오늘 아침 이 시를 읽다가 오랫만에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됐다는게 맞겠네요.

하지만 지금은 애완용으로 나무늘보를 키우는 사람도 꽤 되고, 나무늘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가 되었습니다.(정말? ...-_-)

나무늘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말에 집에서 나무늘보 놀이를 하는 걸로는 갈증이 가시질 않네요.

느리게 한없이 느리게 살고 싶습니다.
2011/09/30 10:44 2011/09/3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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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누군들 남모르게 피워본 꽃 한 송이 없으랴.
마음의 주머니 속에 숨겨두고
여름내 혼자 키워 놓은 아름다운 비밀 하나


남혜숙 시인의 시를 읽으면 언제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너무 강한 탓에 칼날도 아프다*를 읽은 후에 여우야 여우야**를 아직 못보고 있어요. 심지어 칼날도 아프다를 읽을 당시에 이미 여우야 여우야가 출판된 - 구매한 -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는군요. 아마도 제가 아직까지 옆에 사람을 두지 못하는건 그런 성격 탓이 아닌가 싶네요.
기분 좋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급 우울... ㅠㅠ


선인장


단단한 몸 날카로운 가시
거짓말이다

넓은 잎에 화려한 꽃
거짓말이다

모른다
저 몸속 가득찬 끈끈한 눈물



*  남혜숙 시인의 첫번째 시집 2001년 문학세계현대시선집-178
** 남혜숙 시인의 두번째 시집 2009년 지혜사랑 시인선-27
2011/05/09 11:42 2011/05/0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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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 그녀의 염전

2010/10/19 21:43 / Poem

그녀의 염전


  첫눈 내린 어제 저녁 세탁소집 여자가 우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주 운다 차양 밑에 빼곡하게걸린 옷들 밑에서거나 옆집 애완센터 토끼장 앞에서거나
 
  다른 몸들을 덮어주었을 옷 밑에서  울 땐 조금만 운다 울다가는 긴 장대로 아무 옷이나  꺼내 흔들어 보곤 한다 옷들은 위험하게 흔들리고 그녀는 이내 눈물을 그친다
 
  토끼장 앞에 쭈그려 앉아서 울 땐 오래 운다 빨간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앉아 오래도록 칫솔질을 하며 운다 토끼장 속 눈 붉은 토끼가 그녀를 먼저 외면할 때까지

  그런 저녁이 있은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그녀의 염전 앞을 가만가만 지난다 다리미 손잡이를 꽉 잡은  오른손 위에 말뚝처럼 포개어진 왼손. 어깨를 들어올리며 그녀는 다림판 위로 온 힘을 모은다
 
  기도하는 제 손을 내려다보는 황량하게 뚫린 두 개의 검은 염전. 당분간은 그녀도 수차를 젓지 않을 것이다


......

2010/10/19 21:43 2010/10/1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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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를 위하여


자 덤빌 테면 덤벼봐
악어는 정글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이를 갈며 기다리고 있다
복병처럼 숨어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세상이여
나의 납작해진 뒤통수를 보아라

질척질척한 늪, 진흙 속을 뒹굴며 헤엄치다
가끔 열려 있는 하늘 위로 홀로 비상하는 것들을 보면
악어는 입을 쩍 벌린다
단 한 입에 끝내주겠다는 듯이

이 정글의 어떤 사내도
그놈을 길들일 순 없지
어느 새벽녘, 여린 풀잎의 꿈들이
놈의 슬픔을 어루만질 때
진흙 밑에 숨겨오던 희고 부드러운 배를
슬쩍 드러내겠지만

정오의 햇살 사이로 숲이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는 계절
몇 발의 총성이 울리는 어느 날
사냥꾼들은 맥주로 검은 수염 적시며
승리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 순간에도
그 이름을 두렵게 불러볼 것이다

악명 높은 동물이여
죽어서 고급 피혁 제품으로 변신한 뒤에도
복종하지 않는 자의 최후가 갖는 비장미를 자랑하며
번쩍이는 그 이름. 으, 악, 어


요즘 책을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자꾸 읽어서 채워도 어느 순간 바닥을 드러내버리는 얄팍한 감성의 소유자이면서도 노력하지 않았으니 글을 올릴 수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을... 반성을...

그래도 계속 놔두면 빈 집 같아 보일까봐 걱정스러워 시 한편 올립니다.

진은영 시인의 시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는 편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시인의 시를 읽다가 다른 글을 읽으면, 왠지 싱거운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계속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때는 저도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 꽉 물어줄테다!!!"라고 다짐하면서 세상을 살았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마음마저 닳고 닳았는지 아무 생각없이 그저 제 얼굴처럼 둥글둥글 사는게 목표가 되고 말았네요.

날도 덥고, 일도 힘드니 오랫만에 마음 속에 옹이 하나 새겨넣고, 키워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여러모로 당분간 좀 독해져볼까 합니다. ^^

2010/08/13 19:31 2010/08/1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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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사람
  - 기형도에게


그는 내 안에 갇혔다
그리고 슬픔은 그의 안에 갇혔다
그는 예전과 달리 여유가 조금 생겼다. 공원의 좁은 나뭇잎들
아래로 천천히 걷다가 사다리로 올라가
하늘을 뜯어버렸다, 구멍을 막아놓은 판자처럼
빗방울
혹은 별과 검은 빛이 쏟아질 테고
너는 바라볼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할 테지만

나는 여전히 분주했다. 뜯지 않은 서류가
쌓여있고 오후의 햇빛은 빛났다
그가 가는 곳을 신경 쓸 겨울조차 없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흘러나와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를 적셨지만 내 탓은 아니다
그런 저녁이면 참
이상하기도 하지, 돌계단에 앉은
그의 곁에서 늙은 개가 축축한 밤의 뺨을 핥는 것이다
달이 조각칼로
지나가는 날들과 죽은 나무들의 껍질을 벗긴다
환하게, 문득
은빛 기둥이 드러난다

아 그렇군, 아주 오래 전
나는 어둡고 부드러운 세월과 결혼한 적이 있다
자두나무 두 그루 사이에 걸린
희미한 기타소리 같은 얼굴
그 세월이 데려온 슬픔의 의붓자식
모든 청춘이 살해된 뒤에도 살아남을
비명의 공증인, 그는
내 안에 갇혔다


쉽게 읽히고 이해된다고 해서 쉬운 시가 아니고, 어렵게 느껴지고 뜻을 알 수 없다고 해서 어려운 시가 아닌 것처럼 진은영 시인의 시는 제게 언제나 어려운 시였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읽으면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해지는 그런 시'를 찾으면 전 언제나 진은영 시인의 시를 건내주곤 했습니다.

오랫만에 다시 잡은 시인의 시집은 여전히 묵직하고, 아프게 제 가슴을 울리는군요.

이번 주말엔 비가 좀 왔으면 좋겠고, 뜨거운 커피가 그리울만큼 서늘했으면 좋겠고, 그 누구도 그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70년대산(産)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후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

2010/06/24 13:25 2010/06/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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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a 2010/07/05 11:13  Modify/Delete  Reply  Address

    잘 지내!!!

신경림 - 봄날

2010/05/01 12:00 / Poem

봄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늙은 소나무 아래서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판다
잔을 들면 소주보다 먼저
벚꽃잎이 날아와 앉고
저녁놀 비낀 냇물에서 처녀들
벌겋게 단 봄을 식히고 있다
벚꽃무더기를 비집으며
늙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하얀 달이 뜨고
아흔의 어머니와 일흔의 딸이
빈대떡을 굽고 소주를 파는
삶의 마지막 고샅
북한산 어귀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처녀들 웃음소리 가득한 봄날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용화산의 허리를 밟고 있거나 이미 내려와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산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등산화를 마련해 놓고도 사실 그다지 자주 찾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날이라면 한번쯤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좋겠고, 그 사람과 흐르는 땀을 식히면서 벚꽃 잎이 춤을 추는 막걸리 잔을 부딪힌다면 더 없이 좋겠다.

2010/05/01 12:00 2010/05/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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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a 2010/05/05 02:56  Modify/Delete  Reply  Address

    좋으네... 온 산에 풋내 가득한 봄날...
    날이 더워 봄이 봄인가 싶다가도 연둣빛 새잎들 보면...
    봄은 봄이네, 해.
    봄은 봄이고, 유~영종이씨는 유~영종이씨고, 나는 나고
    :) 나야~

    • Jackaroe 2010/05/08 14:06  Modify/Delete  Address

      날은 목이 미어지도록 좋은데, 내가 있는 곳은 밖으로 뚫린 창문이 없어.. 언제나 어두침침한 지하실 분위기가 나.

      좀 전에 점심먹고 들어오는데, 차마 발걸음이 안떨어지더군.. 일을 얼른 끝내고 자전거라도 한판 타야겠어. ^^

봄 편지 1


봄은 온다고 아우성 치는데
나에게 봄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뿌연 황사에 젖은 동인천
계단 밑에 뒹구는 아이의 울음.
버려진 깡통처럼
구겨져 있지는 않은지
잘 견뎌내고 있는지
너에게 봄을 전한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생맥주를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저들은 세상이 그만큼 잘 보일까.
잘 보이는 만큼 더 길이 많지 않을까.
나에게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단지
한 가지 길만이 놓여 있고
그래서 그 길을 가고 있다고 믿는다.
멈추어서 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어디까지 온 것일까.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봄은 온다고 아우성 치는데
너의 길은 잘 보이는지.
밤안개에 젖은 포스터.
너에게 알릴 소식은 없고
나는 어쩜 울고 있다
너에게 안부를 물으며 나는 울고 있다.


비만 오면 황인숙 시인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를 읊어 대는 것처럼 봄이 오면 항상 이 시를 중얼거리게 된다.

며칠 전, 선배의 생일에 술을 한잔 하다가 '나한테 직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뭐 아직도 그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선배에게 말했던 것 처럼 일과 재미는 Left Outer Join 이니까...

단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저 '길이 보이지 않아서', '할 줄 아는 것이 이것 뿐이라서' 라는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뿐이다.

그나저나 식중독이라니... 갑자기 비도 추적추적 오는데, 아프니까 서럽다. ㅠㅠ


봄 편지 2


너에게 묻고 싶은 봄이 있었다 가끔.
떨어진 꽃잎처럼 너의 봄도
속절없이 가고 있는가고.
이젠 봄은 가고 없다.
가는 봄이 서러운 것이 아니라
올 봄을 기다려야 하는 내가 슬프다.
아픈 것은 기다림에 지쳐 갈 내 모습이다.
- 이것을 이기주의라 부른다.
너의 봄은 어떤지
잘 가고 있는지
가는 것이 서럽진 않은지
너에게 묻고 싶은 봄이 있었다 가끔.

아.
나의 봄은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인가.

2010/04/26 17:42 2010/04/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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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 그릇 1

2010/04/16 14:56 / Poem

그릇 1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節制와 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圓은 모를 세우고
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魂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무엇이나 깨진 것은
칼이 된다.




마음이 깨져도 칼날이 될까?.... 글쎄...
2010/04/16 14:56 2010/04/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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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소식

2009/12/18 09:59 / Diary

눈이 오고 있다.
어제부터 .. 지금도 .. 일요일까지 쭉!!!

어제 밤, 취소된 회식을 아쉬워하며 한 잔 기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어귀에서 '이렇게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아본게 얼마만이야...'라는 생각에 갑자기 흥취가 일어 만들어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너무 정면인가? 이왕 찍는거 얼짱 각도로 ...
음.. 그러고보니 눈,코,입도.. -_-

익산의 눈소식을 전하며, 예전에 올렸던 최승호 시인의 시 한편 걸어본다.

간밤에 내린 눈

2009/12/18 09:59 2009/12/1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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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09/12/18 14:10  Modify/Delete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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