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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영 -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먹지 않으려고
입을 꼭 다물고 손을 내저어도 얼굴을 돌려도
어느새 내 입속으로 기어들어와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가버리는 시간
오늘도 나는 누에가 뽕잎을 먹듯 사각사각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쭉쭉 뻗어나간 열두 가지에
너울너울 매달린 삼백예순 이파리 다 먹어치우고
이제 다섯 잎이 남아있다
퍼렇게 얼어붙은 하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이제 또 초록 뽕나무 한그루
내 앞에 설 것이다
나는 한 잎씩 깨물어 삼키고
한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고 매일 매일
그 똥의 색깔은 다르다
열두 가지에 매달린 삼백 예순다섯 이파리 퇴비되어
내게로 되돌아올 때
꺼풀을 벗은 누에가 번데기 되듯 그 바깥 둘레에 나를
싸주는 집, 명주실 얼굴은? 몇 개나 될까


며칠 전 비가 내린 후로 아침 저녁으로 싸늘해진 날씨 탓에 오늘이 며칠인지는 가물가물해도 '올해가 얼마남지 않았구나......'라는 아쉬움만은 마음 한구석에서 하루하루 커져가고 있었는데, 어제 밤 전순영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뜨끔해서는 두달 전쯤 작성해 놓았던 '아랫쪽 일상이 정리되는대로 이것저것 가지고 내려와 실컷 읽어야지 목록'를 펼쳐서는 책을 좀 보다가(보는척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한밤을 자고나면 시간은 똥이 되는데, 똥이 되고 마는데, 지나간 시간 아쉬워하면 뭐하나 싶으면서도 그래도 자꾸 뒤돌아보게 되고, 울컥해서는 소리도 한번 질렀다가 시무룩해서 돌아눕고 그렇습니다. 요즘...

2009/11/03 09:02 2009/11/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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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숯기둥2009/11/03 13:31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맑은 공기 마시고 계시나요?
    • 공기? 그렇게 맑지 않아.. 일하는 곳도 그렇고 사는 곳도 그렇고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거든.
      뭐 자전거 타고 10분만 달려도 논밭이 펼쳐지긴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일에 쫓기다보니 뛰쳐나가기가 쉽지는 않네..^^
  • 미아2009/11/04 01:58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응... 똥이 되는 시간이라...
    • 내 스스로 느끼기에 고민이라는 걸 하기 시작한지가 대략 15년쯤 된거 같은데.... (그 이전의 고민들은 잊었거나 좀 애매한 것들이라;;)

      고민의 수준이라는게 도통 발전이 없네.. 물론 해결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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