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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안개 속에 숨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어렸을 때는 류시화 시인과 칼릴 지브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반발심 같은게 생긴게 아닌 싶긴 한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

동사무소(요즘은 주민센터라고 이름이 바뀐 모양입니다만, 초등학교만큼이나 입에 붙질 않네요.)에 갈 일이 있어서 주민등록증을 찾겠다고 집안을 반쯤 뒤집어 엎다가 책과 책 사이에서 밀리고 밀려 책들의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있던 놈을 찾았습니다.

책의 먼지를 털어내고, 바래버린 세월을 느끼면서 추억을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참 평화로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바닥에 흩어진 책들은 상당히 정신 사나운 수준이었습니다만... -_-)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2008/04/25 10:08 2008/04/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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