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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사다.

  지하철에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란 책 광고판을 보면서 불쑥 중얼거렸다. 꽃은 아름다운 돈이겠지. 모든 게 살짝 역겨웠다. 돈, 돈!
  '돈'이란 단어를 발설하는 것만도 창피해, 피치 못할 땐 방점을 찍으면서야 입 밖에 내던 시절이 까마득 오래전이다. 언젠가는 크리넥스 통에 만 원짜리 지폐를 가득 채워 휴지처럼 뽑아쓰고 싶다는 농담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했었지. (이젠 그도 성에 안 차, 집 안에 현금인출기를 하나 들여놓고 뽑아쓰고 싶다.)
  도무지 모든 게, 모두가 살짝 역겹던 어느 날, 서울역 못 미쳐 동자동 대로를 걷고 있는데 확성기로 거리를 울리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죄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말씀이거나 극우반공 인사의 성난 일갈이려니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돈은 영혼을 파괴하고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나는 휙 고개를 돌려 그 차를 바라봤는데, 이미 멀어져가고 있는 차에서 청아한 선율이 들려올 뿐이었다. 내 영혼이 선동되면서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설움에 차, 그 선율의 따스하고 깨끗한 물살에 몸을 적시며, 서 있었다......

 -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 뒷표지 중에서



요즘은 생각보다 자주 부천역 교보문고에 들리곤 하는데, 어제도 바람이나 쐬고 머리나 깎아야지 하고 집을 나셨다가 휘적휘적 부천까지 흘러가 시집을 몇 권 사오고 말았다.(이렇게 자주 갈 줄 알았다면, 회원카드를 만드는 것인데...)

황인숙 시인의 새 시집과 지나간 시집과 김선우 시인의 시집을 들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묵직한 시집의 무게가 한동안 소홀했던 '읽기'를 나무라는 것 같아 울적해 하다가, 시집 뒷면의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울어버렸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데 눈물 말고는 몸 밖으로 쏟아낼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이 펑펑 대성통곡을 하지는 않았기에 급히 손가락으로 꾹꾹 찍어내고,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 것으로 무마를 시키고 서둘러 전철에서 내려버렸다.

눈물이 많다는 건 비겁하다는 증거라는데 ......

2008/05/06 13:46 2008/05/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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