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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 이름 부르기

이름 부르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로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 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셨던 한 분은 책은 많이 읽지만, 절대 소설과 시는 읽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그 분의 지론을 요약하면 '그런 것들은 인생을 사는데 티끌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으려고 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옆에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몇마디 거들어 봤지만, 결국  별 소득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별로 설득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 분이 얼마 전 결혼을 하셨다. 결혼이라는 것이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무언가로 대체되어 따질 수 있는 것 만은 아닐텐데 그 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직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제 회사 워크샵을 갔다오면서 차 속에서 읽었던 마종기 시인의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를 읽고 책을 덮는데, 책 맨 뒷장에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지난 4월 중순,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한 통계 논문을 발췌하여 게재했다. 그 결론은 두 개의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5백 권 이상의 장서를 가지고 있는 집의 자녀들은 10여 권의 책밖에 없는 집의 자녀들보다 지능 지수가 더 높고 사회생활의 적응도 빨라서 자라면 더 좋은 직장을 가진다. 둘째, 책도 책 나름이다. 셰익스피어나 기타 고전을 가지고 있는 집이 특히 자녀의 성공률이 높다. 시집이 5백 권의 장서 중에서 주종을 이루고 있으면 그 자녀의 성공률은 교양서적을 가지지 못한 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못하다. 그런 집의 자녀는 방랑자나 몽상가가 되기 쉽고 현실 적응력과 경쟁력이 떨어져 사회생활에 부적합하게 되기 쉽다. 이 기사의 제목은 '시를 읽기 마라'였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실용주의만 맹종하는 미국에서 왜 이런 공연한 수고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몇 마디의 변명을 나름대로 붙여보고 싶었다.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자, 함부로 총 쏴 사람을 죽이는 자,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꽃과 나비에 대한 시를 읽고 눈물 흘리겠는가. 노을이 아름다워 목적지 없는 여행에 나서겠는가.

시인이 모든 사람의 위에 선다는 말이 아니다. 시가 위에 선다는 말도 아니다. 나는 단지 자주 시를 읽어 넋 놓고 꿈꾸는 자가 되어 자연과 인연을 노래하며 즐기는 고결한 영혼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태껏 성심을 대해 시를 써왔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세상적 성공과 능률만 계산하는 인간으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꿈꾸는 자만이 자아(自我)를 온전히 갖는다. 자신을 소유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시를 읽는 당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8/03/16 07:15 2008/03/1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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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isoon2009/03/06 11:53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시도 시지만, 에피소드가 더 재미있네요
    -
    1연 3행 (이건 더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 "운문의 목소리로 이름 불러대면" (어떤 책에는)
    2연 끝행 (이건 확실히 오타)
    "같은 가지에서 자리 새를 찾는 새" -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3연 마지막에, 어떤 책에는 이런 한 행(行)이 덧대어 있습니다.
    "목소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을까"
    -
    어쨌든 마종기 시인이 시를 고친 것[퇴고]은 확실한데, 전후(前後)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 Jackaroe2009/03/09 10:47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을 보고 집에 있는 책을 살펴봤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마종기 시인의 책은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2006년 8월에 발행된 것이더군요. 2007년에 2쇄가 인쇄됐구요. 아마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이라고 쓰신 것이 최근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오타는 화들짝 놀래 고쳤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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