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 멍게

멍게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게는 참 조용하다.
천둥벼락 같았다는 유마의 침묵도
저렇게 고요했을 것이다.

허물덩어리인 나를 흉보지 않고
내 인생에 대해 충고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멍게는 얼마나 배려깊은 존재인가?

바다에서 온 지우개 같은 멍게
멍게는 나를 멍청하게 만든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을 지워버린다
멍!

소리를 내면 벌써 입안이 울림의 공간
메아리치는 텅빈 골짜기
범종 소리가 난다.
멍.


얼마 전,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의 시집을 샀다. 샀었다. 사기만 했다.  '참 오랫만이네...'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서울 집 책장 한구석에 꽂혀있다. [아랫쪽 일상이 정리되는대로 이것저것 가지고 내려와 실컷 읽어야지 목록] 의 첫번째 페이지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될까?

이제 슬슬 바람 냄새도 차가워지는 계절이고, 옆구리에 책 하나 끼고, 커다란 나무 밑 평상에서 하루종일 책이나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건 너무 큰 꿈인걸까?

2009/09/12 16:28 2009/09/1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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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a2009/09/18 09:07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글씨를 언제 바꾼거야? 이 글씨는 뭘까...
    내 존경하는 선생님 성함이 "이승호"샘인데 말이지
    샘도... 시집을 냈었어.. 동무들과... :)
    그냥.. 그렇다는...?
    • 이 폰트는 한겨레결체, 선배한테 폰트가 있었나보네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떤지 모르겠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저는 시를 꽤 좋아합니다만, 사실 시를 읽을 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뭐랄까? 단순화 시키자면, 제 자신이 느끼는 시에 대한 이해는 '이건 좋다', '이건 별로다', '이건 뭘까?' 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뭐 그동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별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읽고 느끼면 그걸로 만족이고, 여러 번 읽다보면 처음 읽을 때는 몰랐던 새로운 의미들이 다가오고, 그런 재미에 읽었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히 몇년 전 월간 현대시에 연재 되었던 정일근 시인의 정일근의 편협한 시읽기라는 연재 글중 하나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마 편협하다는 것은 보다 자신의 감정 혹은 경험에 충실하게 시를 이야기 한다는 뜻일테지만, 시인의 글에는 제가 그동안 접했던 평론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자유스러움 뿐만 아니라 시와 시인을 바라보는 정일근 시인의 깊고 잔잔한 시선이 녹아있었습니다.

문득 '그 동안 내가 너무 시 읽기에 소홀했구나.. 시를 좋아한다고 말 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저 작은 것에 만족해서 머물러 있었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보다는 행동이 중요할텐데 오랫만에 강하게 자극 받았으니 나름대로 이것저것 노력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창비, 1993.

2009/04/08 15:29 2009/04/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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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옛 노트에서

이윤학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한승원 - 달 긷는 집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장석남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어제 오랫만에 부천 교보문고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게 아니라 서점에서 책을 쥐어보는 것도 오랫만이지??' 라며 이리저리 고르다가 주루룩 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_-

그런데, 한사람을 제외하면 다 전에 읽었던(알고 있던) 시인들 뿐이네요. 다양하게 읽고 싶은데, 익숙한 쪽으로 손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음악도 좀 그런 편이네요. 하긴 낯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게 좀 심한편이긴 합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데 여전히 주춤거리게 된다는게 참 안좋은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질 않네요.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낯선 쪽으로 조금은 고개를 돌려봐야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옛추억을 퍼 올리는 것이 행복한 못난이지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니 고여있던 가슴에 무언가를 담아봐야겠습니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2009/02/01 11:48 2009/02/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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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이전의 문제 - 게임회사 이야기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http://neverwhere.egloos.com/831251

한참 연재를 하시다가 잡지 측의 요청으로 싹 지우셨었는데, 언젠가 다시 올라와있더군요.

오랫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 보다가, 위의 에피소드에서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전 게임 개발자는 아닙니다만, 반성해야해요. ;;;;

트랙백을 걸고 싶었지만, 이미 블로그는 잘 관리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 출처만 명시합니다.
(블로그의 글을 보면 요즘은 스프링노트에 집중하시는 것 같던데, 그 글도 2007년 4월 글이라...)

2009/01/22 15:34 2009/01/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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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이아범2009/02/03 17:04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뜨억! 내가 만약 아직 결혼을 안했다면 내 이야기가 될 뻔한 내용이다. 젠장. 이넘의 뱃살 세자리가 눈앞이다..
    • Jackaroe2009/02/03 18:26 수정/삭제 댓글주소
      뜨억! 나는 아직 결혼을 안해서 내 얘기다..-_-
      너나 나나 뱃살이 문젠데 이걸 직업병이라고 해야할지 게으름이라해야할지 모르겠다.
      암튼 너 세자리되면 어지간히 놀릴테니까 단단히 맘먹고 함 빼봐.. 응원해주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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