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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 불쌍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드넓은 평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벌판에서
오버바이에른**의 알프스 산기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던 소들이
아름다운 풍경 밖으로
사라졌다
목부도 보이지 않는다
풀 한 포기 없는 콘크리트 축사에 갇혀
인공 골분 사료를 되새김질하며
몸무게를 불리던 소들은
푸른 초원이 그리워 마침내
미쳐버렸다
비실비실 미끄러지다가 넘어지고
도살되어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태연하게 불타는 소
불쌍해라
고기를 태워버리는 육식 인종
착유기로 우유를 짜내던 축산 농민들
그리고 불쌍해라
값싸게 기른 보람도 없이
재만 남기고 사라진
수백만 마리의 소 값 때문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미쳐버린 사람들

* 독일의 북동쪽, 덴마크와 맞닿은 평원 지대.
**독일의 남서쪽, 바이에른의 고원지대


며칠 전 목은 마르고, 가진 건 오천원짜리 문화상품권 한장이 전부, 시집을 사고 남은 돈으로 음료수나 하나 마셔야지 하고 서점에 들어갔다가 시집 가격이 오천원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들고 나왔다. 부끄럽다.(나 왜이러니...ㅠㅠ)

김광규 시인은 일상의 풍경들을 따뜻하게 읊어내면서도 우리가 돌아봐야할 것들에 대해서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이 글에 적은 '불쌍한 사람들' 역시 그런 범주에 있다고 본다. 김광규 시인은 시를 참 젊게 쓴다. 나는 시인의 약력을 보기 전까지 30대 중반이나 후반 정도를 예상했으나 1941년 생이라는 말에 쓰러져야했다. 대단하신 정력이고, 감각이 아닐 수 없다. 존경스럽다. ^^

아직 시집이 반쯤 남았다. 앞으로 어떤 시가 또 내 가슴을 뛰게할지 너무 기대된다. 읽은 내용보다 남은 내용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지독한 아쉬움이 남는 느낌. 정말 오랫만에 느끼는 설레임이다.

2005/07/16 22:34 2005/07/16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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