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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나 - 등 / 삶은 가짜다 / 죽음에 관한 어떤 기록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서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모습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엔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 번도 마주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우리 삶에서 손이 닫지 않는 곳, 내 몸의 뒷편에 죽음이 있다. 우리 삶의 일부이자 마침표이면서 결고 직시하고 싶지 않아 재단되어진 그 바깥에 버티고 서있다.


삶은 가짜다
-어느 재연배우의 자살


나는 애초에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난 죽어서 더 유명해졌지요
죽어서야 주인공이 되고 네이버 검색 1위가 되었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몇 년 더 꾹 참고 살아볼 걸 그랬어요
난 삶을 재연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삶은 몸뚱어리가 없어요
문득 영화 제목이 생각나요
죽어야 사는 여자라고
난 죽어서 살고 있어요
죽음은 때때로 삶을 똑바로 비춰주기도 하더군요
누가 내 역설적인 죽음을 증명해주세요
내 삶은 가짜였어요


죽음에 관한 어떤 기록


거칠었던 일생일 수록
죽음은 단순하다
길 위에 쓰던 붉은 문장들을
질끈 쥔 손아귀로 움켜쥐고 가버렸으니

집도 없었다
아내도 없었다
주민증도 없었다
쓰레기통 옆에 낙인마냥 찍혀진 얼어붙은육체만이
그의 부재를 증명할 뿐이다
강원도나 격포
혹은 전라도
그 어디쯤 떠돌아온 발자국들이
사내의 몸을 찢고 사방으로 달려가고 있다

졸음처럼 사내의 몸을
부드럽게 지웠을 눈송이들
망각은 언제나 육체안에 깃들어 있던 것
거칠었던 일생을 자신의 몸에 꾹꾹 눌러 담고
사내는 지퍼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거칠었던 일생일수록
죽음은 단단하다

2009/02/05 13:40 2009/02/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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