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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잡지를 읽는 이유

처음 내가 영화잡지를 사게 된 까닭은 단순히 매일 타야하는 지하철 안에서의 30여분간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워크맨이나 Mp3Play는 당연히 없었고, 신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도 일주일에 두권가량의 영화잡지를 본다. 그런데 문득 잡지를 보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에 대해서 느끼게 되어 그 얘기를 살짝 적어보려 한다.

1. 잡지를 보기 전보다 더 영화를 적게 본다.

이유가 뭘까? 주머니 사정도 사정이지만, 잡지 한권 속에 나와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들 그리고, 정보들을 통해서 그전까지 영화를 보면서 얻었던 포만감을 어느정도 채우는 느낌이었다. 물론 죽지 않을 만큼만...

2. 영화를 판단하는 잣대가 흐려진다.

영화만 볼때는 혹은 영화잡지를 보는 초반에는 기사나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영화에서 내가 느낀점과 읽었던 글과 비교를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은 잡지에 나와있는 글을 보고 봐야할 영화와 보면 실망할 것 같은 영화를 구분하고 있었다.

물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정보와 내가 미쳐 몰랐던 사실들도 알려주니까. 단지 요즘 내가 잡지 속의 글에 끌려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좀 찜찜할 뿐이다. 하지만, 난 이렇게 궁시렁 거리면서도 계속 잡지를 볼 것이다. 아직은 읽어서 실망하는 글보다는 즐거운 글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생각을 좀 하면서 읽어야지 싶다.

요즘들어 재밌게 읽고 있는 코너가 있어서 그 중에 하나를 살짝 옮겨본다.

김세윤 기자의 궁금증 클리닉

[질문] <슈렉> 같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보면 더빙하는 배우들의 발음과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입 모양이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지 알고 싶어요

[답변] 가끔 DVD 서플먼트나 홍보 동영상 등에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메이킹 필름을 볼라치면 열심히 녹음에 임하시는 배우들 모습을 볼 수 있다. 외화 더빙하는 성우들마냥 걔들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겠거니, 넘겨짚는 사람 많다. 아서라. 섣불리 넘겨짚다간 팔 부러진다. <슈렉 2> 메이킹 필름을 함 보자. 주인공 슈렉이 '장화 신은 고양이'를 처음 만나는 시추에이션, 얕잡아 보고 놀리다가 한 방 먹은 슈렉이 ‘오우!’하며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장면을 녹음하고 있다. 목소리 연기를 맡은 마이크 마이어스가 자기 사타구니라도 걷어차인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처절한 사운드를 내느라 난리도 아니다. 그때 카메라가 홱 옆으로 돌아간다. 엥? 그림 나오는 모니터가 없다. 대신 그림 안 되는 '디렉터'만 서있다. 더빙에 참조할 그림이 없는 스튜디오. 바로 이것이 정교한 입맞춤의 비결일지니 일명 선(先)녹음, 영어로 프리스코어링(pre-scoring)이다. 말 그대로 그림 그리기 전에 ‘먼저’ 녹음한다는 뜻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그림에 목소리를 덧입히는 게 아니라 목소리에 그림을 덧입힌다. 즉, 일단 배우들이 맨땅에 헤딩하고 나면 그 헤딩한 자리에 공을 그려넣는 것이다. 이미 녹음해 놓은 대사에 맞춰 립싱크하는 캐릭터를 그려대니 당연히 입 모양이 그럴싸하게 맞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대사를 녹음하는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관찰했다가 맡은 바 캐릭터의 입술 움직임이나 얼굴 표정에 적극 반영하기도 한다. 걔들의 말발이 더 실감나는 까닭이다. 일례로 슈렉의 눈썹 움직임은 마이클 마이어스의 눈썹 움직임을 본딴 것이라고, 2001년 4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W호텔에서 만난 제작진이 그랬다. 그들은 당나귀의 입 모양도 실제 에디 머피의 입 모양과 비슷하게 맞췄노라고 한국의 기자들에게 자랑했더랬다. 한층 정교해진 3D 기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1편 제작 당시, 당초 슈렉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 팔리가 급사했다고 1년 작업이 하루 아침에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게 당연하다. 마이어스의 말투와 느낌에 맞춰 그림을 새로 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 완성된 후에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래서 어느 제작진은 한 인터뷰에서 “만일 좀 더 늦게 죽었더라면 손실이 더 컸을 뻔했다”며 그의 이른 죽음을 은근히 고마워하기도 했던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 하시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창세기적 프로세스와 달리 한국과 일본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제작 과정을 선호한다. 그 때문에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말과 입이 따로 노는 낯 뜨거운 입맞춤의 사연을 저마다 한 가지씩은 갖고 있는 것이며, 본의 아니게 앙다문 입술로 장광설을 늘어놓는 궁극의 복화술을 선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들 선녹음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역시 문제는 돈이다. <오세암>을 제작한 이정호 PD는 “할리우드처럼 세밀한 입 모양까지 신경 쓰려면 그림 매수가 몇 배로 늘어가고 제작 기간도 길어지기 때문에 제작비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돈만 있으면 다 되느냐? 그건 아니다. 여지껏 꼴리는 대로 그리다가 갑자기 들리는 대로 그려야 하는 애니메이터들의 고충도 무시 못한다. 달랑 시나리오만 읽고 재주껏 감정을 살려 목소리를 연기할 관록의 배우들이 적은 것도 문제다. 그나마 다 같이 모여서 녹음하면 분위기나 업되련만. 다들 바쁘신 스타 분들이라 미친 놈처럼 혼자 떠들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할 것이니 섣불리 시도하기 겁난다. 실제로 피오나 공주의 목소리를 연기한 카메론 디아즈도 “제작진은 나에게 마이크 마이어스, 에디 머피와 늘 함께 등장할 거라 말했지만 정작 녹음실에는 그들 대신 스토리 보드만 있더라”며 선녹음의 현장이 "심히 당황스러웠다"는 이쑤시개(요지)의 인터뷰를 한 적 있다. 아까 예로 든 마이크 마이어스도 간혹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광인들마냥 시종 혼자 묻고 답하며 녹음에 임하였던 바 참으로 선녹음은 혼자 놀기의 진수이며 궁극의 ‘쌩쇼’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인즉, 함부로 욕심낼 프로세스가 아니란 말씀이다.

한편 <원더풀 데이즈>를 만든 김문생 감독은 언어에 따른 주둥이 놀림의 차이를 지적하기도 한다. “영어는 한국말보다 입술의 움직임이 크고 다양해서 입 모양과 대사를 일치시키는 효과가 크지만 상대적으로 입술 움직임이 적은 한국말은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PD 역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일본조차 선녹음을 도입하지 않는 걸 봐도 굳이 할리우드 방식이 최고라고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림이 먼저냐, 녹음이 먼저냐는 연출 스타일의 차이일 뿐, 선녹음의 경지가 기필코 정복해야 할 백마고지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쯤되면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 모양이 왜 그 모양'이냐며 힘차게 내어뻗은 손가락질이 머쓱해진다. 하긴, 재패니메이션이 세계를 재패한 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뭐가 달라도 달랐던 까닭인 바, <마리이야기>와 <오세암>이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대상을 탄 마당에 그깟 입 모양 좀 틀리면 어떤가. 다만 전문 성우들의 탁월한 목소리 연기로 입 모양의 어색함을 만회하는 재패니메이션을 본받아 부디 어색한 더빙이나 아니 해주면 참 좋겠다.
2006/01/13 23:36 2006/01/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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