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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비가 와도 젖은 자는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얼마 전, 오규원 시인의 유고시집 '두두'를 샀다.

요즘 출근길에 읽고 있는데, 시인의 마지막 시라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제목도 없이 서문에 올려져 있던 짧은 시가 머리에 남아 사실 다른 시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작년 스승의 날을 전후 해서 시인의 소식을 알게되고, 울적한 마음에 긁적거렸던 메모가 어딘가에 남아있을텐데, 오늘 집에 가면 한번 찾아봐야겠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 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2008/03/11 15:07 2008/03/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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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 物證

物證


아프리카 탕가니카湖에 산다는
肺魚는 학명이 프로톱테루스 에티오피쿠스
그들은 폐를 몸에 지니고도
3억만 년 동안 양서류로 진화하지 않고
살고 있다 네 발 대신
가느다란 지느러미를 질질 끌며
물이 있으면 아가미로 숨쉬고
물이 마르면 폐로 숨을 쉬며
古生代 말기부터 오늘까지 살아
어느 날 우리나라의 수족관에
그 모습을 불쑥 드러냈다
뻘 속에서 4년쯤 너끈히 살아 견딘다는
프로톱테루스 에티오피쿠스여 뻘 속에서
수십 년 견딘는 우리는
그렇다면 30억만 년쯤 진화하지 않겠구나
깨끗하게 썩지도 못하겠구나
2007/09/21 13:22 2007/09/2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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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 오규원 시인을 추모하며

한적한 오후다 / 불타는 오후다 /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故 오규원 시인께서 중환자실로 들어가시기 전
제자의 손바닥에 손톱으로 쓰셨다는 시인의 마지막 시라고 한다.
손바닥에 화인(火印)처럼 남았을 시다.

뒤늦게 선생의 죽음을 알게된 며칠 전
나는 "비가 와도 젖은자는"이라는 시를 홈페이지에 올렸었다.

시인의 시는 언제나 잔잔하게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인의 시는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주었다.
시인의 시는 언제나 귓가에 속삭이듯 내 곁에 있었다.

시는 여전히 내 곁에 있는데,
시는 여전히 내 가슴을 울리는데,

시인은 나무 밑에 잠이 들었다.

너무나 따사로운 햇살이 슬프고,
너무나 푸른 잎들이 서럽고,
너무나 고요한 그늘이 애닯다.

5월 15일.. 시인을 마음으로 모셨던, 이름모를 한 남자가 조용히 운다.

2007/05/15 16:18 2007/05/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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