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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분꽃이 피었다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痛症)

분꽃이 피었다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痛症)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한 여름, 햇살이 너무 따가워 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을 때면, 언제나 화단 한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있던 분꽃이 생각났습니다.

조용히 피어서 조용히 머물다가 조용히 지는 꽃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왜그리도 분꽃을 좋아하셨는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꽃에 대한 추억은 꽃을 따서 꽃술을 길게 늘여 귀걸이를 만들어 차거나, 까맣게 영근 꽃씨를 한움큼 모아서 새총으로 날리고 놀던 기억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금씩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고, 햇볕이 쨍쨍한 날이면, 마당 한구석 붉은 벽돌로 경계를 올린 작은 화단과 그 화단 가득 피어있던 분꽃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토록 조용하던 그 풍경이 시나브로 제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2008/04/19 12:41 2008/04/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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