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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기 - 먼지 / 호주머니 속의 시

먼지


검은 잎사귀의 9척 장신 나무가 우거진
새로 이사온 아파트가 어둡다
무슨 먼지가 이리도 많을까.
어머니는 온종일 먼지 걱정을 했다
한 해가 가도 먼지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집을 비운 날은 가구 위로
도무지 알 수 없는 먼지의 양이 있었다
나는 서걱서걱 눈을 굴리며 책을 읽었다

여름이 오자 어머니는 검은 잎사귀 나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목욕 바구니에 수상한 잎사귀를
따 넣기도 했다 가을이 오고 어머니는
먼지가 되셨다

나는 먼지가 무서워졌다
아내가 나가는 날이면 안양천변에서
공연히 산책을 했다
어린 여고생들이 둥둥 떠서 귀가했다
먼지가 몰려들 갔다

나는 먼지 하나 없는
두 손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주일 저녁 성당에서 모임이 있었다
아내가 정중한 교우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남편은 먼지 같은 사람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호주머니 속의 시


어느 하루 나는
팔레스타인의 한 시인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날 그는 강당에서
세계 시민들을 향해
울고 있었다
시를 읽으며
울고 있었다

어느 하루 나는
그 시인의 시를 적어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하루 나는
시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의 구석 어느 어둠 속에서
흐느끼던,

시의 소리를 들었다
2008/04/11 12:53 2008/04/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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