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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옛 노트에서

이윤학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한승원 - 달 긷는 집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장석남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어제 오랫만에 부천 교보문고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게 아니라 서점에서 책을 쥐어보는 것도 오랫만이지??' 라며 이리저리 고르다가 주루룩 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_-

그런데, 한사람을 제외하면 다 전에 읽었던(알고 있던) 시인들 뿐이네요. 다양하게 읽고 싶은데, 익숙한 쪽으로 손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음악도 좀 그런 편이네요. 하긴 낯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게 좀 심한편이긴 합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데 여전히 주춤거리게 된다는게 참 안좋은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질 않네요.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낯선 쪽으로 조금은 고개를 돌려봐야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옛추억을 퍼 올리는 것이 행복한 못난이지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니 고여있던 가슴에 무언가를 담아봐야겠습니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2009/02/01 11:48 2009/02/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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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분꽃이 피었다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痛症)

분꽃이 피었다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이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痛症)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殘像)들
지나가는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길이었긴 하여도
그런 길이었긴 하여도
 
이런 날은 아픔이 낫는 것도 섭섭하겠네


한 여름, 햇살이 너무 따가워 마당에 물을 뿌리고 있을 때면, 언제나 화단 한 구석에서 조용히 피어있던 분꽃이 생각났습니다.

조용히 피어서 조용히 머물다가 조용히 지는 꽃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왜그리도 분꽃을 좋아하셨는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분꽃에 대한 추억은 꽃을 따서 꽃술을 길게 늘여 귀걸이를 만들어 차거나, 까맣게 영근 꽃씨를 한움큼 모아서 새총으로 날리고 놀던 기억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금씩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고, 햇볕이 쨍쨍한 날이면, 마당 한구석 붉은 벽돌로 경계를 올린 작은 화단과 그 화단 가득 피어있던 분꽃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토록 조용하던 그 풍경이 시나브로 제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2008/04/19 12:41 2008/04/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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