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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에 대한 단상 - 웃음과 짜증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대하여

전 싫어하는 말장난이 있습니다. 딱 꼬집어 한마디로 정의 하긴 힘듭니다만,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종류의 말장난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형 뭐 먹을래요?"

"음.. 난 에스프레소"

"예?" (정말 못들은 것 같습니다.)

"에스프레소" (웃으며 나름 정확한 발음으로 친절하게 말해줍니다.)

"예??" (제법 긴가민가 하는 얼굴을 해줍니다만 택도 없습니다. 제 속에서 뭔가 알수 없는 것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에스프레소" (이 부분에서 저는 살살 얼굴이 굳기 시작합니다.)

"예???" (제 반응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끝을 보자는 뜻인지 노골적으로 다시 물어줍니다.)

"에스프레소" (억양이 한 톤쯤 올라갑니다. 분노가 찰랑찰랑 흘러 넘치기 시작합니다.)

"예????" (재밌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하고 이기죽거립니다.)

"...... 그냥 너랑 같은 걸로 먹자" (한 두해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닌데, 커피 한 잔 때문에 살인은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분을 삭힙니다.)

"아아아아... 에스프레소요?" (분노폭발!!! 로켓펀치!!! 육두발사!!! 음... 그 친구 기일이 언제였더라...-_-)


반면에 좋아하는 말장난도 있습니다. 아래는 제가 얼마 전에 본 드라마의 대사를 옮겨 적은 것입니다.

"에이지, 에이지 선생님, 진짜로 오시는 거지?"

"아마 오실 거예요"

"아마라니?"

"오세요"

"그것도 물어봤겠지?"

"네, 좋아하는 남자 타입. 뜬금없는 사람이 됐지만요"

"뭐래?"

"약간, 그늘이 있는 사람이래요"

"그거야 날씨만 좋으면 누구나 생기는 거잖아"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알아, 날 콕 집어 말하는 것 같아서 약간 흥분해서 그래"

"마스터한테 무슨 그늘이 있어요?"

"나한테 없으면 누구한테 있어?"

"그야 날씨가 좋으면 누구한테나..."

"재미없어!"


그런데, 전 이런 말장난이 좋아요. 뭐랄까? 평범하고 무료한 일상에서 작은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할까요?

저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가 전혀 다른 경우라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가 싫어하는 말장난과 좋아하는 말장난이 그저 정도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허용 기준치가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그렇다면 말 그대로 제게 있어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존재한다는 결론인데, 아... 이건 좀 우울합니다.)
 
분명 웃음과 짜증 사이에는 미묘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와 애증 혹은 미움이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그게 좀 지나치게 얇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운 밤입니다.
2009/03/02 13:59 2009/03/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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