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에 대한 글 검색 결과 5개search result for posts

장석남 - 옛 노트에서

이윤학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한승원 - 달 긷는 집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장석남 -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어제 오랫만에 부천 교보문고에 들렸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인터넷으로 주문하는게 아니라 서점에서 책을 쥐어보는 것도 오랫만이지??' 라며 이리저리 고르다가 주루룩 질러버리고 말았습니다. -_-

그런데, 한사람을 제외하면 다 전에 읽었던(알고 있던) 시인들 뿐이네요. 다양하게 읽고 싶은데, 익숙한 쪽으로 손이 가는건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사실 음악도 좀 그런 편이네요. 하긴 낯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그런게 좀 심한편이긴 합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데 여전히 주춤거리게 된다는게 참 안좋은 것이라는걸 알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질 않네요.

이 책들을 다 읽고 나면, 조금은 낯선 쪽으로 조금은 고개를 돌려봐야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옛추억을 퍼 올리는 것이 행복한 못난이지만,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니 고여있던 가슴에 무언가를 담아봐야겠습니다.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2009/02/01 11:48 2009/02/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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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요즘 의도하지 않게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더군요.

뭐 꼭 연말이라서 이런저런 약속이 잡혔기 때문은 아니었구요.

근 1~2년을 전화로 안부만 묻던 사촌 동생을 결혼 빌미로 만나 술 한잔.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를 제외하면 연락 한 통이 없어 내심 서운했던 동생을 길에서 우연히 만나 밥 한끼.

복잡한 심사에 잠도 오지 않고, 냉랭한 방 구석에 혼자 있는 것도 우울해, 가볍게 한잔 하려고 들린 포장마차에서, 남는 자리가 없어 합석을 한 누군가와 합이 맞아 술 두잔.

뭐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뭐 제 성격 탓이겠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며칠 간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더군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을 만났을 때의 낯설음, 반가움, 긴장, 설레임, 그 사람과의 대화 속에 녹아있는 의미들... 그런 복합적인 이미지들이 사정없이 제 온 몸을 두드려대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는 의미구요. 아주 드물지만, 만난 사람이 생전 처음보는 사람이거나 자리가 불편했을 경우는 실제로 몸이 아프기도 하구요.

그런데 얼마 전, 합석에 합석을 거듭해 대책없이 커진 술자리에서 한 아가씨와 통성명을 하게 됐습니다.

이름이 '사랑해'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제가 술김이어서 비슷한 발음을 잘못 들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정말 이름이 '사랑해'라더군요. 

뭐 그 사람과의 대화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가열차게 마신 술 덕분에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참 잊기 힘든 그 이름 뿐이지만, 그 만남 이후로 '사랑해'라는 말을 가만히 입 안에서 웅얼거려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자꾸 찾아보게 됩니다. 정호승 시인의 다른 시와 함께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시에요.

그 사람의 이름 덕분에 그리고 시를 읽으면서, 내가 진정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이런게 이상형이라는 것일지도..) 좀 더 차분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사실 요즘 심적으로 좀 쫓기는 느낌을 받기도 해서 될대로 되겠지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거든요..)

그나저나 싱숭생숭 뒤죽박죽 끓어오른 마음이 가라 앉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요.

당분간 술값 좀 들겠습니다. -_-a

2008/12/22 12:01 2008/12/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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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jii2008/12/24 10:40 수정/삭제 댓글주소 댓글달기
    사랑해...

    왠지 낯선 단어...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을 만났을 때의 낯설음, 반가움, 긴장, 설레임, 그 사람과의 대화 속에 녹아있는 의미들... 그런 복합적인 이미지들이 사정없이 제 온 몸을 두드려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음....

    나를 만나고도 그러겠군....
    • 당연히 너를 만나고도 그러하지.. 근데 중괄호에 강조해준 그 말은 말야.. 나쁜 뜻만은 아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러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든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묘사(墓祀)를 지내러 내려간 고향 하늘엔 따뜻한 별들이 가득했다.

서울에선 별이 없어서 별자리를 찾기가 힘들었는데, 여기선 별이 너무 많아서 별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적막한 달빛 아래 반짝이는 개울가를 걸었고, 달이 구름에 가리기라도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포근한 어둠 속을 걸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행복한 고독이었다.

2008/11/11 21:29 2008/11/1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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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못 / 허물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종양 덩어리가 호흡기를 누르기 때문에 누우면 숨을 쉴수가 없어
20일이 넘도록 앉아서 잠을 자다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모부는
하얀 침대 위에 굽은 못처럼 앉아 계셨다.

숨을 쉬기에도 버거워 쇳소리가 나는 목으로 당신께서는
'너 결혼할 때 까지는 죽지 않을테니 걱정말라' 하셨다.

이제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해진 손을 잡으며
'올 여름엔 다 같이 낚시하러 위도에 가요. 몸조리 잘 하세요' 하며
인사하고 도망치듯 나온 건물 밖 햇살은 너무나도 맑고 따스해 서글펐다.

너무 눈이 부셔 자꾸 눈물이 났다.


허물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짝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을 벗고 날아간 어린 매미를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허물이 없으면 매미의 노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허물의 힘에 놀라
슬며시 손을 떼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보았다
팔순의 어머니가 무릎을 곧추세우고 걸레가 되어 마루를 닦는다
어머니는 나의 허물이다
어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아직 느티나무 둥치에 붙어 있는 까닭은
아들이라는 매미 때문이다

2008/03/10 13:09 2008/03/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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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2월 9일이었던가? 약속이 있어 부천역을 서성이다가 시간이 많이 남아(실은 정확한 약속이 잡힌 건 아니었다. 집에 있기에는 좀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바람도 쐴겸 일찌감치 길을 나선 참이었다.)

부천역사에 붙어있는 쇼핑몰 7층에 교보문고를 들어갔다.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쪽을 쭉 훑어보다가 '이 달의 베스트셀러 코너'였나? 정호승 시인의 시집이 올라와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집어들었는데 그 동안의 시를 모아놓은 시선집이었다.

'시선집만 몇번째야.. 새 시집은 이제 안 내시나?' 시무룩한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니 왠걸 '포옹'이 3년만에 나왔단다. 그것도 작년 9월에... 낼름 사들고 집으로 와버렸다. 캬.. 역시 좋구나...

스테인드글라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시집을 다 읽고서(시집을 빠르게 여러번 읽는 편이어서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가지 마른 안주를 챙겨 시원한 맥주를 몇잔 마시고서 잠이 들었다. 참으로 행복한 주말이로구나.
.
.
.
결국 약속을 잊은 벌(술김에 이불을 제대로 덮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겠지만...)로 난 감기에 걸려 며칠을 고생해야 했다.

2008/02/18 14:16 2008/02/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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