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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 - 망각은 없다 (정현종 역)

망각은 없다(소나타)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부엌 세간,
흔히 썩어 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 얘기부터.
만나고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허나 그건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어떤 날의 어두움은 이미 지나가고,
우리들 자신의 음울한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어두움도 지나가고.

보라 제비꽃들, 제비들,
우리가 그다지도 사랑하고
시간과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긴 꼬리를 볼 수 있었던 것들.

허나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을 싸고 자라는 껍질을 잠식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흔히 갈라놓는 바다 제방이 참 많고,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외국 시에 대한 제 앎의 정도는 습자지가 형님 할 정도로 얇습니다.
파블로 네루다의 경우도 영화 일포스티노를 통해서 처음 알게됐으니 말 다했죠 ;;;
하지만 굳이 늦게 배운 도둑질에 대한 이야기를 줏어 섬기지 않더라도 저는 이 시인을 무척 좋아합니다.
제게 "외국 시는 우리 시에 비해서 맛이 없다." 라는 편견을 깨준 첫 시인이기도 하구요^^

평소라면 '파업'이나 '시가 내게로 왔다'를 올렸겠지만, 오늘은 왠지 이 시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 세상살이에 힘겨워하는 누군가들에게요. ^^

2008/08/04 11:30 2008/08/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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