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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 하늘꽃

하늘꽃


날씨의 절세가인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이 텅 비는 것 같습니다
앞서 떨어지는 눈송이들에 걸려
뒷눈송이들이 둥둥 떠 있는
하늘까지 까마득한 대열입니다
저 너머 깊은 天空에서
어리어리한 별들이 빨려들어
함께 쏟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빨려들어
어디론가 쏟아져버릴 것 같습니다
모든 상념이 빠져나간 하양입니다
모든 소리를 삼키고
하얗게 쏟아지는 눈 오는 소리
나를 호리는 발성입니다

몇 걸음마다 멈춰 서
묵직해진 우산을 뒤집어 털어
길 위에 눈을 돌려줬습니다
계단골이 안 보이도록 쌓인 눈
아무 데나 딛고 올라가려니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 나옵니다
내 방에 들어서 문을 닫으니
호주머니 속에 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황인숙 시인의 리스본行 야간열차를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 지난번 올린 글을 찾아보니 한달 전이네요.

어제 밤, 일찌감치 자보겠다고 술을 한잔 했는데도 이상하게 잠은 오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어설프게 먹은 술이 깨려는지 머리는 아파오고, 조금만 더 지체를 하다가는 해가 떠버릴 것 같아 안절부절 못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샤워를 하고는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나른한 기분 속에서 책장을 넘기다가 자전거를 탈 컨디션은 안된다는 이유로 올라탄 출근길 버스 안에서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모든 시가 다 좋았지만, 이제 한참 더워지고 있으니 이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심야영화 3편을 연이어 보면서 아침을 맞는 경우는 요즘도 종종 있습니다만, 체력이 된다면 책을 읽으면서 밤을 밝히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보면 학교 때는 꽤 자주 있었던 일이었는데 말이죠...)

2008/06/11 15:02 2008/06/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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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의 시집을 사다.

  지하철에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란 책 광고판을 보면서 불쑥 중얼거렸다. 꽃은 아름다운 돈이겠지. 모든 게 살짝 역겨웠다. 돈, 돈!
  '돈'이란 단어를 발설하는 것만도 창피해, 피치 못할 땐 방점을 찍으면서야 입 밖에 내던 시절이 까마득 오래전이다. 언젠가는 크리넥스 통에 만 원짜리 지폐를 가득 채워 휴지처럼 뽑아쓰고 싶다는 농담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했었지. (이젠 그도 성에 안 차, 집 안에 현금인출기를 하나 들여놓고 뽑아쓰고 싶다.)
  도무지 모든 게, 모두가 살짝 역겹던 어느 날, 서울역 못 미쳐 동자동 대로를 걷고 있는데 확성기로 거리를 울리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죄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말씀이거나 극우반공 인사의 성난 일갈이려니 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이 들려왔다. "돈은 영혼을 파괴하고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나는 휙 고개를 돌려 그 차를 바라봤는데, 이미 멀어져가고 있는 차에서 청아한 선율이 들려올 뿐이었다. 내 영혼이 선동되면서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설움에 차, 그 선율의 따스하고 깨끗한 물살에 몸을 적시며, 서 있었다......

 - 황인숙, 리스본行 야간열차 뒷표지 중에서



요즘은 생각보다 자주 부천역 교보문고에 들리곤 하는데, 어제도 바람이나 쐬고 머리나 깎아야지 하고 집을 나셨다가 휘적휘적 부천까지 흘러가 시집을 몇 권 사오고 말았다.(이렇게 자주 갈 줄 알았다면, 회원카드를 만드는 것인데...)

황인숙 시인의 새 시집과 지나간 시집과 김선우 시인의 시집을 들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묵직한 시집의 무게가 한동안 소홀했던 '읽기'를 나무라는 것 같아 울적해 하다가, 시집 뒷면의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울어버렸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한데 눈물 말고는 몸 밖으로 쏟아낼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이 펑펑 대성통곡을 하지는 않았기에 급히 손가락으로 꾹꾹 찍어내고, 손등으로 눈을 비비는 것으로 무마를 시키고 서둘러 전철에서 내려버렸다.

눈물이 많다는 건 비겁하다는 증거라는데 ......

2008/05/06 13:46 2008/05/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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